들녘의 곤포 싸일리지를 볼 때면 떠오르는 노달래 면장님.
그 분이 마산면 면장직에 계실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한우축산농가를 위해 볏짚 암모니아 가스 처리 지원사업이 시행되었지요. 예정된 가스 주입 날짜에 맞추어 짚더미를 비닐로 밀봉하고 기다렸으나 어떤 이유에선지 지연되었습니다. 본면 담당 직원에게 유선 질의를 하니 본마을에서 함께 신청한 농가 중 준비가 덜 된 농가가 많으므로 기다리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짚단을 운반하여 규격에 맞추어 쌓아 놓는 동안 짚단에서 발생하는 열과 외기기온이 복합작용하여 밀봉한 비닐 안으로 김이 서려 흘러내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볏짚이 상해 한 해 동안 소에게 먹일 수 없겠다 싶었지요. 그래서 비닐을 걷고 짚단을 사방으로 헤치다 보니 지친 몸이 감당키 어려워 숨을 몰아쉬고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지연되면 안되겠기에 감히 높으신 면장님께 전화를 넣었습니다. 차량 오가는 비용은 본인이 지불할테니 더 이상 지연시키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렸지요. 노 면장님은 잠시 후 직접 전화를 주셨고, 일전의 담당 직원과는 정반대의 답을 제시하셨습니다. 그 날로 본인비용부담 없이 가스 주입이 끝났습니다. 시간을 잘 지켰다는 이유로 하마터면 썩어서 무용지물이 될 뻔 했던 짚단을 면장님 덕분에 잘 활용하였지요.
지금은 기술이 발전하여 짚단을 쌓고, 비닐을 씌우고, 암모니아 가스를 주입 하는 과정 없이 곤포 싸일지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들녘에 널린 그것을 보면서 옛 일이 떠오르고, 노달래 전 면장님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자꾸만 듭니다.
그 분의 선행은 제게만 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평생을 호적 없이 살아오신 기산면 산정리 어느 할머니께도 노 면장님의 따뜻한 관심이 전해졌다는 소식을 지역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몸소 할머니를 모시고 강경에 위치한 해당 관청을 찾아 수회 오가며 노령의 그분께 호적을 갖춰주신, 바른 공직자의 표상이신 그 분. 이 나라에 태어나 강산이 수 번 바뀌고 수많은 사람과 스치며 사는 동안 제도와 기회가 있었겠건만 모두 무심코 지나칠 때 국민 된 기본 권리를 찾도록 도와주신 면장님. 그 노부부는 고마움을 꼬깃 접어 깊이 모았던 지폐를 봉투에 넣어 정중히 사례했으나 공직자로써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극구 사양하신 면장님. 도로변에 위치한 그 노부부의 집앞을 지나노라면 너무도 정겨운 그 선행의 광경이 기쁨으로 떠오릅니다. 그 노老할머님의 칭호 "우리 민장님"은 참으로 정겹습니다. 지역 신문에 보도를 보고 듣고 너무 감명해 소리 없는 박수 갈채를 지역민 모두 보냈었지요.
본면에 부임하셨을 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면장실을 항상 열어 놓겠으니 언제든 누구든 할 말씀 있으신 분 찾아주십시오"라고. 구호만이 아닌 실천으로 문을 열어 놓고 면정을 이끌어 이 지역에 태평성대의 페이지를 기록으로 기억으로 남기신 분입니다. 정년으로 공직에서 떠나셨으나 우리 민은 그분을 길이 존경할 겁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선행을 베푸신 그 분의 행적은 제 마음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끝으로 덧붙이자면, 노 면장님이었다면 오늘의 저에게 드리워진 "행따(행정 따돌림)의 덫"을 진작 걷어주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이 살고 있는 집은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하수도 공사에서 애초에 제외된 유일한 가구일 것입니다. 마을에서 떨어져 외딴 곳에 있다든지, 물탱크가 앉는 자리와 본 가구가 위치한 곳의 고도가 비슷하다는 것은 두 번째 일입니다. 아예 시작부터 본 가구를 공사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명백한 행정적 실수임에도(실수가 아니라면 의도적 배제겠지요) 누구 하나 책임지고 공사를 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재 공사가 진행되는데 있어 가장 큰 문제가 되는 토지사용 문제를 제게 해결하라고 떠넘기는 판입니다. 60년 넘게 이곳에서만 발붙이고 살고 있는 군민으로써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의 입장에서 책임감 있게 열린 행정을 펼쳤던 노 면장님의 선정善政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서천군 마산면 안당리 358번지 김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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